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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_렌즈_사진

양화진 선교사 묘역 을 가다.

예전에 본 책이 하나 있다.  이땅에 오셨던 선교사님들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결코 기분 좋은 책은 정녕 아니었다.

우리가 아는 선교사 라는 분들이 결코 이땅에서 좋은 일만 하시지는 않으셨던거 같다.  더 이야기 해봐야 개독교 이야기가 될듯 해서 더는 않한다.  하지만 난 선교사들이 우리나라 땅에 와서 광산 개발 하고 초가삼간 집 주변에 서양식 대궐 같은 집을 세우고 (가족들을 위해서 란 명분과 선교사들의 홀로서기를 위해 재원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그렇게 미션을 하셨는지 정말 몰랐다.  이점 캐톨릭 신부 수녀님....옆동네 절두산 계신분들...에게 심히 죄송스럽고 부끄러웠다....한명의 기도교인이자 그들의 후손으로서...

다만 그나마 그책중에서 마음이 푸근한 이야기 가 있는데 그것은 가족을 동반한 선교사님들이 잘가지 않던 전라도 깡시골로 전도 다니던 처녀전도사 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분들이 진정한 이땅의 선교사님들이었다고 저자도 명시 하였었고.....  전라도의 기독교는 이 처녀 전도사들이 없었으면, 그렇게 작은 불꽃들이 없었으면 오늘의 기독교를 이른 큰불을 못 피웠을것이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였었다.

하여간에 그책을 읽은후 그들의 뒷 이야기가 사뭇 궁금했었는데 오늘 적은 숫자지만...그분들의 그후의 모습들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애통한 맘...목이 메었다.  결혼도 못하고 자손도 못남기고 이땅에서 수고만 하다가 가신 분들의 오늘날 묘역의 모습이.....

양화진 선교사 묘역을 가보면 그들만의 안식처에도 부익부 빈익빈 의 모습을 적나라 하게 볼수 있다.

나는 삐까번적 한 묘역들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야 나 말고도 관심 표명할분들 엄청 많을테니....그런분 묘지 소개 하고 싶은 맘은 1도 없다.  이미 다른 블로거님들이 가서 대부분이 화려한 묘석이나 유명하신분들 묘역 위주로 사진들을 찍어서 포스팅을 하셨으니...  그러고 보면 양화진 가이드분들도 한번쯤은 생각을 다시 해보셨으면 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분들보다 무명에 가까운....포격으로 인해, 묘석 밑퉁이만 남아 이름도 잊혀진 그런 분들에 대한 자료 수집과 연구를 통해 진정 양화진 선교사 묘역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이야기 해주려 하시는지....주최측의 보다 포괄적인 준비가 필요 하다 생각해 본다.

내가 보고 감동을 받은 묘지는 이런 묘지들이다.

이 부서진 십자가는 교회안에 십자가 하나 없는 우리 식구들이 다니는 미국 한인교회에 가져다 놓고 싶었다.  아니 할수만 있으면 이렇게 만들어서 놓고 싶은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영상 설비를 위해 십자가도 안다는 교회....양화진에 와서 부서진 십자가를 봤을때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생각해봐라 영상 음향 장비도 있고 시계도 있고 딴따라 밴드시설도 있는데 정작 십자가는 없으니....이 양화진 선교사 묘역에 와서 부서진 십자가를 보니....한심하기 이를데 없다.  구한말에 이땅에 선교오신 바로 그땅에 그 고단한 육신을 누이신 서양 선교사님들이 한민족의 교회 예배 처소가 이렇게 바뀌는것을 보시면 뭐라 하시겠는가....예배의 처소..그게 어디든지 십자가가 중심이 아니었는가?  십자가야 다 마음속에 있는거 뭐...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계시니.....담임목사님도 그닥 십자가 이야기 않하시고.... 담임목사님은 당신의 설교중 동영상을 사용 하시는게 교회에 십자가 다시는것 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 같으니...할말이 없다.  장로님이나 안수집사님들도 가만 계시니....유구무언일 뿐이다.  이야기 해봐야 분란 일으키지 말고 순종하란 이야기를 들을테니까....

현대 교회는 예배당 밖에만 십자가 있으면 되고 예배당안에는 없어도 되는건지...모태신앙이기는 하나 동종업계 종사자가 아닌 나로서는 당췌 알수가 없고, 이해도 안된다.  이점 천주교 예배당이 무척 부럽기는 하다.  기도교인이 십자가를 찾고 의지하는게 우상숭배는 아니지 않는가?

부서져서 완전치 않은 십자가를 볼때...난 더 맘의 평안함을 느낀다는걸 양화진에 와서 알게 되었다.  십자가, 단상이 고급질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십자가도 예배중에 스크린에 띄워 놓고 두손 들고 찬양 하고 이자리에 주님 임재 하소서 하고 거룩하게 부르짖으면 주님이 오시겠는가?

답답하고, 죄송하다.  믿음의 선배님들 영면하신곳에서 몸둘바를 모르겠다.


보통 외국인 묘비를 보면 말들이 길게 써 있다.  고인의 일생을 몇마디로 짧게나마 남겨 후손들이 알게 하겠다는 뜻으로 보통 태어난해 돌아가신해 생전 사회의 타이틀 등등을 명기 하지만 위에 보면  정말 간단 명료한 묘비도 있다.  글씨가 거의 fade away한 묘비도 있고....

내가 보기에 이분들이 소위 처녀전도사 들 아니었나 싶다.  결혼을 않하셔서 자손이 없으니 묘소 관리도 다른 유명 선교사님 묘역처럼 잘되어 있지도 않고 그저 활동을 하신곳이 열악 하고 배우지 못해 글 모르는 백성들이 우굴거리는 농촌 지역에서 활동을 하다 하늘나라로 가셨으니 묫자리도 부실, 묘비명도 이를데 없이 단순 하다.  그저 선교사 로서 언제 가셨다..라고만 명기된 묘비가. 쓸쓸하게 서을 하늘 밑에서 조그만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그나마 6.25때 포격을 맞아  흉터 투성이인 묘비도 있고...적화통일이 안되어 망정이지 까딱했으면 이분들은 자기의 육신 조차 누울 자리 한구석도 이국의 땅에서 얻지 못하셨을뻔 하셨다.  하나님이 보우 하셨다....

최근에 서서평 선교사님의 다큐멘터리가 제작이 되었다는데, 차제에 우리에게서 잊혀진 그분들의 숭고하고 고단 했던 생애가 조금이라도 더 많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한다.

묘역이 나뉘어져 있는데 여기가 A묘역으로 묘지 가운데 높은곳에 모셔져 있다.  화려한 묘역, 초라한 묘역 이 같이 모셔져 있는데 내눈에는 여기도 세상으로 보였다.  선교사님들도 후손이나 후학 후원자들을 잘 만나야 하고 생전 타이틀도 좋아야 이국땅의 믿음의 후손들에게 그나마 대접을 잘 받는듯 하다.

선교사님들의 삶은 그들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는것 같다.  아무래도 대도시에 있는분 하고 시골 구석에 있는분 하고 비교를 해보면 열악함의 차이도 분명히 더 있는거 같다.

예를 들어,

보통 케냐 선교사 하면 "아! 오지에 계시는 구나...고생 하시는구나"  태국에 계신다 하면..."아 불교국가에서 얼마나 고생이 심하실까"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대부분 그들은 케냐의 나이로비에 모여 사는것으로 안다.  태국은 방콕 아니면 치앙마이 계시고...태국은 불교국가란 환경만 빼고 기존 제반 환경은 우수하니 이야기 할것도 없고, 케냐도  물론 서울 같지야 않겠지만 나이로비 만큼은 나름 스마트폰 ,인터넷 다되고 미국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교육시스템도 있고....그렇게 최악의 환경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슨돈이나 후원 받으시는지 모르겠지만 애들 대학 교육도 미국으로 보내기도 하고...

하지만 마사이족 상대로 선교를 하느라 정말 아프리카 오지에 들어가 전기도 없고 물론 티비도 없고 인터넷도 안되고 그런곳에서 선교 하시는 분도 있는것으로 안다.

고xx이라는 중년의 미혼 선교사님이 마사이족 거주지에서 살면서 선교사로 고군분투 하신다고 들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10년전만 해도 이분 연락처가  나이로비에 있는 사서함 뿐이었다는걸 알고 나름 그 처지가 어떤지를 알게 되었다.  핸드폰도 잘 안되고 티비 인터넷 안되는곳...당연히 전기나 식수 열악하기 그지 없었을것 같다.  21세기 지금도 우리는 대한민국의 하늘 아래서 문명생활을 만끽하고 살지만 그렇치 못하게 사는 분들도 많을것이다.

오늘 양화진의 묘역을 방문해서 선교사로서의 이력만 있는 온전치 못한 묘비들을 보고나서 불현듯 이 케냐에 계신 고 선교사님이 생각이 났다.

음지에서 조용히 일하는 분들 그분들의 직업이 무엇이든 우리는 비난하면 안된다.  그런분들의 수고 노력 봉사가 오늘의 우리가 될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을테니까. 

R.I.P.
몇몇 묘비에 십자가와 같이 표시되어 있었다.  물론 화려하지 않고 관리되어지지 않아 초라한 묘비에 주로 표시 되어 있었다.  온갖 미사여구로 장식된 그런 묘비도 아니다.  그저 선교사로 이땅에서 가셨다..는 확실한 Fact만 남겨져 있다.  하나님이 다보고 계셔 더 이상의 미사여구가 필요치 않아서 그런건지, 아니면 그렇게 밖에 할수 없었던 모종의 일들이 있어서였는지 나는 모른다.

R.I.P.  Rest in Peace......
정말 그렇게 계시기를 바란다....

나의 양화진 방문은 막 내린 구수한 커피가 아닌 내린지 오래되어 카페인이 마구마구 내입술을 씁쓸케 하는 그런 맛을 내게 남겨 주었다.

혹시라도 미국에 있는 애들 하고 같이 온다면...난 입 딱 다물고 그냥 애들보고 느껴 보게 하고 싶다.

진이 엄청나게 빠진 그런 하루였다.